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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27일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서 연설을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7월 27일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서 연설을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가상자산 시장은 지금 탐욕으로 채워진 정글이다. 가상자산 시황 중계업체인 코인마켓캡(Coinmarketcap)에서 제공하는 '공포·탐욕 지수'가 중립 아래로 떨어지는 경우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을 앞두고 지수는 점점 상승했다. 지난 1월 18일에는 66, 1월 19일에는 64를 찍으며 '탐욕'의 영역에 있었고 사람들은 위험자산을 마구 사들였다. 이 지수는 0에 가까울수록 극단적 공포를, 100에 가까울수록 극단적 낙관을 의미한다.

비트코인의 가격이 폭발하고, 리플과 솔라나 등 메이저 알트코인들이 폭등하고, 그래서 투자자들이 탐욕에 넘쳐나는 건 트럼프 대통령이 친(親)가상자산 대통령이 될 거라는 기대감 탓이다. 그리고 이 기저에는 '전략준비자산'이라는 단어가 깔려 있다. 그가 대선을 준비하며 내건 주요 공약 중 하나가 '비트코인 전략준비자산화'다. 미국은 달러 가치 안정성과 위기 시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준비자산을 비축해두고 있다. 현재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준비자산은 유로화, 엔화 등 해외 통화와 금,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등이다.

미국도 러시아도 전략준비자산화 고민 중

지난해 7월 트럼프 대통령은 비트코인 전략준비자산 비축을 처음 언급했다. 미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 기조연설자로 나선 그는 "미국 정부가 현재 보유하거나 미래에 얻게 될 비트코인을 100% 모두 보유하는 게 내 행정부의 정책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비트코인과 가상자산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중국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를 본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 의제에 비트코인을 추가했다"고 분석했다.

지금 가상자산의 폭등은 그가 약속한 비트코인의 전략준비자산화가 어떤 형태로든 구체화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에서 기반한다. 비트코인이 전략준비자산이 된다면 미국은 달러 패권을 유지하는 데 비트코인을 적극 활용하게 된다. 비트코인을 매입하는 데 어떤 재원을 활용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미 연준은 자신들이 비트코인을 매입하는 데 줄곧 비판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연준은 비트코인을 소유할 수 없으며 이에 관한 법 개정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반면 미 정가의 압박은 생각보다 거세다. 국내 거래소 빗썸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신시아 루미스 미 공화당 상원의원의 새로운 법안을 소개했다. 루미스 의원은 지난해부터 연준이 비트코인을 매입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혀 온 인사다. 현재 채굴 가능한 2100만개의 비트코인 중 지금까지 채굴된 비트코인은 약 1980만개이다. 그의 법안은 연준이 보유한 금을 매각해 유통되고 있는 비트코인 중 5% 정도를 매입하고 최소 20년간 보유한 뒤 시장에 매도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렇게 생긴 차액은 미 행정부의 국가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는 게 루미스 의원의 법안 내용이다.

만약 이런 계획대로 미국이 비트코인을 전략준비자산으로 확보한다면, 미국의 동맹국과 적대국들 모두 이 흐름에 동참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최근 러시아 하원에서도 비트코인을 전략준비자산으로 비축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의 경제제재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배제됐다. 이 때문에 국제 금융에서 손발이 묶인 상태다. 비트코인을 서방의 금융제재를 우회할 수 있는 방안으로 주목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며칠 전인 지난 1월 16일, 가상자산 업계 인사들이 트럼프 정부에서 AI 및 가상자산 전담자문기구의 책임자가 된 데이비드 삭스에게 행정명령을 요청하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전했다. 매체에 따르면 이들이 요청한 건 두 가지다. 하나는 비트코인의 매각 중지다. 미 법무부는 다크넷 마약 거래 사이트 '실크로드'로부터 압수한 190억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매각할 계획을 갖고 있다. 업계 인사들은 이를 팔지 말고 보유해 전략준비자산으로 활용하라고 요청했다. 다른 또 하나의 요구는 비트코인 매입과 관련한 행정명령이다. 비트코인을 전략준비자산으로 비축하라는 요구를 전달한 것이다. 트럼프 인수팀 대변인은 가상자산 업계의 요청에 대해 "가상자산 및 기타 신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장려하겠다는 공약을 반드시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부채 해소법으로 제시된 비트코인

특히 미 부채와 비트코인과의 관계는 흥미로운 대목이다. 미국 자산운용사 반에크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 정부가 비트코인을 전략준비자산으로 채택한다면 2050년까지 국가 부채를 최대 36%나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봤다. 부채한도는 미국 정부가 차입할 수 있는 돈의 규모를 제한하기 위해 의회가 설정한다. 현재 연방정부의 부채는 약 36조달러에 이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줄곧 "부채를 갚기 시작할 것이며 세금도 더 낮출 것"이라고 말해왔다. 부채를 갚는 것과 감세는 서로 정반대 방향이다. 이 때문에 가상자산을 활용하는 아이디어가 등장했다.

전략준비자산으로 또는 부채를 막는 용도로 비트코인을 활용하려면 가격 상승은 필수적이다. 비트코인은 다른 코인과 달리 2100만개로 유한하다. 이 때문에 수요가 넘친다면 가격이 오른다. 2017년 처음 1비트코인이 1000만원을 돌파했을 때, 비트코인은 과거 네덜란드의 튤립버블과 비교되며 "비트코인을 사느니 튤립을 사겠다"는 비아냥을 샀다.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2020년 5000만원을 돌파했을 때도 똑같은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전고점을 경신하더니, 지금은 1비트코인이 1억50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유한한 자원에 개인과 기관 수요가 몰렸고 이제는 정부까지 나서면서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에는 긍정적인 전망이 나온다.

미 자산운용사인 비트와이즈의 최고투자책임자(CIO) 매트 호건은 "미 정부가 비트코인을 비축할 것이라는 예측은 아직 비트코인 가격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현재 10만달러 선을 유지 중인 비트코인의 연말 가격은 긍정 일색이다. 갤럭시디지털은 올해 4분기 18만5000달러, 스탠다드차타드는 20만달러, 비트마이닝은 18만~19만달러를 전망한다.

물론 여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 이행이 필수적이다. 미 연방정부가 비트코인을 보유한다는 건 '안전자산'으로 어느 정도 공인했다는 걸 뜻한다. 이미 가상자산 시장 내 주요 코인들은 미국의 생산자물가지수(PPI)나 소비자물가지수(CPI) 등의 주요 지표에 영향을 받고 있고 마치 주식시장처럼 움직인다. 미국의 예측 플랫폼인 칼시(Kalshi)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비트코인을 전략준비자산으로 비축할 것이라는 예측이 약 70% 정도로 본다.

다만 장밋빛 미래의 부정적 변수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 임기 때도 파격적인 공약들을 여럿 내걸었다. 하지만 미국 팩트체크 사이트인 폴리티팩트(PolitiFact)에 따르면 공약 이행률은 23% 정도에 불과했다. 선거 유세에서 내세운 102개 공약 중 이행된 건 24개에 불과했다. 절반이 넘는 55개는 파기됐다. '전략준비자산화'라는 호언장담도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표만 노린 공약이라는 일각의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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